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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인터뷰②] 신승훈 “지금 젊은 친구들의 플레이리스트에 .. [인터뷰①]에 이어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Q. 30주년 기념 앨범인 ‘마이 페르소나’(My Personas)앨범의 소개를 부탁한다. 신승훈 “나의 페르소나가 뭔지 생각했다. 내가 영화감독이고, 내 음악의 송강호, 하정우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했다. 이번엔 장르가 어떻고, 브리티쉬에 아일리쉬를 가미하고 이런 거보다, 내 분신 같은, 봉준호 감독의 송강호처럼, 명함같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신승훈의 음악을 이제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타이틀곡이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와 ‘그러자 우리’다. 이 두 곡이 ‘신승훈 30년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는 ‘너 울어? 더 울려줄게' 같은 느낌의 음악이다. ‘그러자 우리’는 ‘너 울어? 가만 있어줄게’ 그런 감정이다.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는 가장 신승훈다운 음악일 거 같다” “이번은 실험정신이 있는 앨범이 아니다. ‘Thank to’같은 앨범이다. 예전 곡을 다시 수록하기보다 신곡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6곡의 신곡과 내가 미리 선택한 노래를 수록했다. (미리 선택한 곡은)후배 싱어송라이터의 좋은 곡, 명곡을 찾아서 들려주고 싶었다. ‘사랑, 어른이 되는 것’은 더 필름의 곡으로, 우연찮게 카페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가 제목이 너무 함축적이고 좋았다. 노래도 듣다가 먹먹해지면서 울컥한 게 왔던 거 같다. 나중에 수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실현됐다. 또 다른 (후배의 곡인) ‘Walking in the Rain’(워킹 인 더 레인)은 내가 머리를 감고 있다가 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정말 멜로디가 잘 나와서 비누칠을 한 상태로 가만있었다. 노래 제목을 들으려고. 다행히 DJ가 ‘원우가 부릅니다. ‘Walking in the Rain’’이라고 해서 기억해뒀다가 연락해서 만났다. CCM 가수이고, 그쪽에선 유명하다.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하고 이번에 수록하게 됐다” “‘늦어도 11월에는’은 인간 신승훈에 대한 노래다. 양재선이 가사를 썼는데, 25년을 같이해서 나에 대해 많이 아는 친구인데도 계속 나에게 검수를 받았다. 양재선이 ‘오빠는 인생이 사계절이라고 했을 때 언제쯤인 거 같냐’고 묻더라. 그래서 10월 정도라고 했더니 아직 9월이라고하더라. 그래서 그 계절에 맞춰 가사를 쓴 것 같다” “이 노래에는 결혼에 대한 대답도 있다. 가사중에 ‘만약에 와 줄 거라면 늦어도 11월에는 와달라’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아직 놓지는 않았구나 생각해달라. 어머니도 아예 안하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할 거 같다” “‘내가 나에게’라는 곡은 내 마음속의 타이틀이다. 멜로디도 잘 뽑았고 콘서트 엔딩 때 이 노래 부르면 같이 동감하고 은은하게 젊은 날의 초상들이 몰려올 거같은 같은 느낌이다. 어른이면 힘들어도 힘들다고 안하지 않나. 힘들다고 하면 진짜 힘들까봐 숨긴다는 내용인데, 내 마음속 0순위의 곡이다” “더블 타이틀이라는 것 때문에 마케터와 부딪히기도 했다. 한 곡에 전념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두 곡을 타이틀로 하면 (둘 다)빛을 보기 어렵다는 건의가 있었는데, 30년 된 가수가 뭐가 아쉽겠나? 심지어 곡도 5분이 넘고 전주도 길다. 반항심리는 아니고, 전주가 그 정도 길이어야만 했다. 30년 된 가수가 공격력을 가지고 만들기보다 ‘30년을 정리했고, 들어봤으면 좋겠다’의 느김이다. 모험정신 하나도 없이 사랑했던 여러분을 위해서 만든 신곡이고 앨범이다” Q. 30년간 일체 스캔들이나 이슈가 없어서 연예계 수도승으로 불린다. 신승훈 “20년 전엔 주지스님이라고 불렸다. 참고로 전 무교다. 인간 신승훈은 엣지도 없고 평탄 한 삶이다. 노력하겠다. 하하” Q. 요즘 눈에 듸는 가수가 있나? 신승훈 “지코다. 트랙 만드는 거나 멜로디 뽑는 게 눈에 띈다” Q. LP부터 테이프, CD, 음원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다. 각 전달 매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신승훈 “LP에서 CD로 넘어가면서 CD의 음질에 놀랐다. 테이프는 운치는 있었지만 늘어지기도 하고, A면에서 B면으로 돌아갈 때 감동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CD는 음질에서 놀랐다. 정교한 소리가 담기니 이건 있어야 한다고 생했다. CD가 나오면서 악기에도 정교함이 생긴 거 같다. 모든 게 달라졌다. 난 3집부터 CD가 나왔는데, 그때부터 공간감이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연주하는 사람도 예민해지고, 더 발전하고 성장한 거 같다. 30년 전, 20년 전 노래는 LP로 들어도 괜찮다. 그런데 지금 노래를 LP로 들으면 조금 이상하다. 이번 앨범은 30주년을 기념해서 LP도 찍기로 했다. 나도 LP로는 아직 못 들어봤는데, 들어보고 느낌을 전달하겠다”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Q. 신승훈은 이미 한국 가요사에 기록될 불세출의 싱어송라이터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이런 성과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신승훈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거 같다. 내가 행사를 간다고 쳤을 때, 아주머니들이나 임우너 시상식 그런 데를 가면 ‘와~’하고 난리가 난다. 하지만 지금 고등학교에 가서 내가 등장하면 바로 ‘이 아저씨 누구야?’라고 한다. 그들만의 영역이 생긴 거 같다. 이들의 영역에 노래를 강요 할 수도 없다. 물론 요즘 트로트나 올드스쿨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다. 그냥 트렌드가 이렇게 되다보니까 이렇게 된 거 같다” “다만, 젊은 친구들이 딜리버리의 역할은 해준 거 같다. 젊은 친구들이 전달은 해주는데 그들이 좋아하진 않는다. 내 곡이 나오면 ‘엄마 신승훈 앨범 나왔어, 엄마가 좋아했던 사람이잖아’ 하고 전달을 해준다. 이번에도 ‘신승훈 뭐 나왔다’라고 전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도 나이를 먹으면 뭔가를 찾게 되더라. 어떤 가수를 말하는 게 아니라 트로트라든지 발라드 같은 특정 장르를 찾는다. 지금 젊은 친구들도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맞는 음악을 찾을 거 같다. 물론 그때의 플레이 리스트에 신승훈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Q. 눈에 띄는 후배로 지코롤 언급했는데, ‘아무노래’를 듣고 느낌이 어땠나? 신승훈 “‘아무노래’는 먼저 재킷사진을 보는데 홈파티 하다가 휴대폰으로 찍은 느낌처럼 자유분방함이 있었던 거 같다. 또 가사는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양해서 좋았다. 나는 사실 재킷 사진을 보고, 가사적인 표현보다 음악 사운드의 기법들에 놀랐다. 음악 잘 한다는 팝같은 느낌을 받았다. 힙합에 라틴, 퓨전 이런 걸 섞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어울릴게 할 수 있지?’ 하는 걸 느꼈다” Q. 반환점을 돌아서 씁쓸하진 않나? 신승훈 “노래할 시간을 몇 살까지라고 정하는 건 말이 안 되긴 한데, ‘보이지 않는 사랑’을 못 부르게 된다면, 내려 놔야한다. 지금은 원키로 부르는데, 반키까진 용서가 된다. 그런데 한키 이상 내려가면 내려놔야한다. 원곡의 느낌이 안 나오면 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씁쓸하다기보다 연륜으로 커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뭘 툭 던졌을 때 10년치 경험이 느껴지는 그런. 지금 나의 목표가 ‘렛 잇 비’ 같은 노래를 쓰는 거다. 먹먹한 감성이 오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 만약에 신인이 ‘렛 잇 비’같은 노래를 부른다면 감동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승훈정도면 불러서 감동이 온다는 그런 신선함이 있을 거 같다. 씁쓸하지만 연륜과 노하우 스토리로 커버를 해보겠다” Q. 엣지 없는 신승훈이라고 했지만, 요즘 일과는 어떻게 되나? 예전과 좀 달라진게 있나? 신승훈 “나는 작곡 모드, 가수 모드, 프로듀서 모드가 있다. 가수 모드일 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게 준비한다. 하지만 작곡가 모드, 프로듀서 모드일 때는 많이 망가진다. 술도 많이 먹고 밖에도 못나간다.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콘서트 연기되면서 리듬이 좀 흐트러지긴 했다.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가 경기 일정에 맞춰 몸을 만들었는데, (일정이 변경돼) 리듬이 망가진 것 같은 기분이다. (계획했던)모든 게 틀어져서 ‘헉’ 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려한다. 기다림이 길어진 만큼 팬들도 나도 설렘이 커질 거 같다” “또 예전에는 밤에 곡을 썼는데 지금은 아침에 쓴다. 자고 일어나면 노래를 들었지 건반을 치진 않았는데, 지금은 건반이 소파랑 침대 옆에 있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예전엔 밤에 곡을 써도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곡이 안 나오더라. 아침에 스트레스 없이 개운할 때 곡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운동하고 작업하고 그렇게 지낸다. 일생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칩거한지 오래됐다”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Q. 30년간 정상을 지킨 원동력은 무엇인가? 신승훈 “내 힘만으론 안됐을 거다. 힘이 떨어질 때 충전해준 뭔가가 있다는 건데, 난 그게 내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팬은 당연히 고맙고, 팬이 아니데 ‘노래 좋다’고 해주는 사람들도 고맙다. (내 노래를 듣고) ‘원래 슬픈 노래 싫어했는데 이 노래는 좋네’라고 하는, 이런 게 원동력이 된 거 같다. 내가 힘들었을 때 꼭 (힘이 되는)뭔가가 온다. 팬들이 오고, 다른 뭔가가 온다. 어쩔 때는 내가 가수인 걸 잊고 지내다가 ‘아 맞어 나 신승훈, 가수였지’ 이렇게 느낄 때도 있다. 곡에 대한 반응들을 보고 이런 분들을 위해서 계속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큰 원동력이라기보다, 누군가가 계속 석탄을 넣어줘서 지금까지 온 거 같다” Q. 끝으로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렇기 때문에 30주년은 여러분이 만들어준 거다. 나 혼자만의 자축이 아니라, 서로 셀레브레이션을 해야 한다. 서로에게 박수를 쳐야한다. 의리 지켜준 팬들에게 감사드리고 의리에 보답하기 위해서 나도 열심히 했다. 음악만 한 게 아니라 음악도 한 30년이었다. 계속 지켜봐주던 의리 있는 팬들에게 마음의 트로피를 하나씩 놓고 싶다. 30년 함께 해줘 감사드린다”최현정 기자 gagnrad@idol-chart.com저작권자 ⓒ 아이돌차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04.09 11:08
[인터뷰①] 신승훈 “30년을 음악 하니, 이제 좀 선이 그어..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1930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업가수이자 대중가수로 꼽히는 채규업이 등장한 이래로, 대중음악계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꾸준히 탄생했다. 4~50년대는 현인이 그랬고, 6~70년대는 남진, 나훈아, 이미자 등을, 80년대는 조용필이나 전영록을 이런 ‘시대의 아이콘’으로 꼽을만하다. 그렇다면 90년대는 어떨까. 90년대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는데다가 유독 많은 스타가 탄생하고 사라진 시기인 만큼 다른 시대에 비해 많은 스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곤 한다. 물론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만 하지만, (지금은 방탄소년단에 의해 경신됐지만) 단일앨범 최다 음반 판매량 기네스 기록을 달성한 김건모나 90년대 말 혜성같이 등장해 현재 K팝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한 H.O.T나 젝스키스 등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 그리고 신승훈이 있다. 한국 가요사에서 ‘신승훈’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의 음악 성적부터가 이를 증명한다. 신승훈은 역대 누적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2019년 데이터 기준, 약 1700만장 추청)했고, 또 90년대 가장 많은 1위를 기록한 가수이며, 공중파 가요 차트 역대 최장 기간 연속 1위 기록(SBS ‘인기가요’ 14주 연속 1위)도 보유하고 있다. 신승훈의 가치는 단지 성적에만 그치지 않는다. 음악적인 역량에서도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따라 붙는다.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앨범의 타이틀곡을 직접 작곡한 것은 기본이고, ‘발라드 황제’라는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매 앨범마다 수많은 장르를 수록해 넓은 스펙트럼을 과시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평단의 호평과 상업적 성공 모두 거머쥐며 그 완성도도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신승훈은 일찌감치 믹싱과 마스터링 등을 중요하게 생각해 음질에도 세심한 신경을 기울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 결과 음반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도 했다. ‘웰메이드 앨범’, ‘믿고 듣는’ 등이 요즘 들어 사용되는 표현이긴 하나, 이미 90년대부터 이에 정확하게 어울리는 활동을 해온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가 바로 신승훈이다. 그런 신승훈이 이제 데뷔 30주년을 맞이한다. 평생을 음악을 하겠다고 누누이 밝혀온 신승훈이지만, 30년이라는 세월은 그에게도 남다른 감회로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이에 그는 팬들과 함께 30년이라는 시간을 추억하고자 전국투어와 30주년 기념 앨범을 계획했다. 그래서 그런지 투어명과 앨범명도 의미심장하다. ‘2020 THE신승훈SHOW : 미소 속에 비친 그대’와 ‘My Personas’가 그것이다. 신승훈의 지난 30년이라는 시간을 들어보기엔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부족하겠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그의 소회와 스페셜 앨범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 이하 신승훈과의 일문일답 (※본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 온라인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Q. 먼저 30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말해주면 좋을 것 같다. 신승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것저것 예측을 하는데, 화상 인터뷰를 할 거라곤 예측을 못했다. 30주년이라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몸이 힘들더라도 많이 만나서 이것저것 많이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라 이렇게 됐다. 이런 식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하하” “30주년이 됐고, 그동안 열심히 해왔고,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보다 뭔가 내 속에 있었던 이야기도 해야 할 거 같다. 소회도 말해야할 거 같고... 10주년에 누가 마라톤에 비유해서 ‘반환점을 돌았다’고 했는데, 그때 난 의아했다. ‘이분들은 20년만 음악을 할 생각인가? 난 평생 할 건데’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다. 20주년 때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30년이 되니까 이제는 ‘반환점을 돌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마라톤은 반환점이 있지만, 인생에서는 반환점이 없는 것 같다. 반환점은 갔다가 돌아오는 것 인데 인생은 쭉 가는 거지 않나?” “내가 신인 때 어느 인터뷰에서 ‘한 획을 그으려고 소란스럽게 음악을 하지 않겠다. 한 해 한 해 점을 찍어서, 나중에 멀리서 봤을 때 선이 되는 가수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제 멀리서 보면 좀 선이 되어있는 것 같긴 하다. 그래도 기념하고 추억하고 이런 걸 이야기하기에는 내가 공연도 앨범도 이야기할게 많아 바쁘다.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기보다 오늘 이 자리에 충실하게 싶다. 그런 마음이 내 첫 소감이다” Q. 신승훈의 대표곡 1곡을 꼽자면 어떤 곡을 선정하겠나? 신승훈 “‘그 후로 오랫동안’도 있고 ‘보이지 않는 사랑’도 있고... 매년 계속 바뀐다. 어쩔 때는 이 곡, 이럴 때는 이 곡 그런다. 하지만 오늘은 30주년이라 의미 있는 곡이 ‘미소 속에 비친 그대’이다. 이 곡으로 (신승훈의) 처음이 시작됐으니 그렇다. 6월부터 하는 투어 ‘The신승훈 Show’의 제목도 ‘미소 속에 비친 그대’이다. 30주년에 의미 있는 대표곡일 거 같다” Q. ‘발라드의 황제’와 ‘국민가수’의 수식어는 어떻게 생각하나? 신승훈 “내가 농담식으로 이야기한 게 ‘우리 집안에 왕족은 없다. 영의정까지만 있다’고 했다. 지금은 발라드 황제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니더라. 컴백하면 ‘돌아온 황제’라고 하기도 한다. 하하. 연인이 헤어지고 뒤돌아보면 나쁜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생각나는 것처럼, 발라드를 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장르는 여러 가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신승훈이 잘해도 이런 걸 하면 어색해’라고 한다. 애증의 관계인 닉네임이다. 한 가지 색을 정해줬다. ‘발라드 황제’하면 신승훈이 꼭 들어가는 건 고맙지만, 그래도 난 이 프레임에 갇혀있진 않겠다” “국민가수라는 닉네임도 어느 기자분이 ‘자기 가족이 다 신승훈을 좋아하는데 이 정도면 국민가수’라고 해서 생긴 건데, 나는 예전에 반납했다. 이제 어린 친구들이 나를 잘 모른다. 그래서 국민가수는 아니다. 또 ‘다시 국민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냐’고 하면, 그건 아닌 거 같다. 나에 대한 추억이 있는 분들과 같이 가는 게 좋은 거 같다. 그러면서 더 알려지면 고마운 일이지만, 아무튼 국민가수에 대한 생각은 이 정도다. 또 예전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가수’라고도 했는데 이제 설명이 많이 붙었으면 좋겠다. 하하”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Q. 가수로서, 또 제작자로서 가요계를 30년간 이끌어왔다. 30년 전과 지금의 음악계를 비교하면 달라진 점이 있나? 신승훈 “난 (가요계를)이끌지 않았다. 묻어왔다. 하하. 나의 데뷔시절은 90년 초반이다. 그때는 연예계라는 걸 통틀어서 가요계가 중심이었다. 모든 방송사의 프라임 시간대에 음악프로가 있었고 시청률도 엄청났다. 그래서 많은 이슈를 모았고, 가수의 앨범을 사서 서로 공유를 했다. 음원이 아니라. 앨범을 사기위해 노력하고, LP에 바늘을 올리고 하는 그런 수고에 대한 쾌감과 대가를 많이 느낀 시절이다. 아날로그지만 정감이 있었다” “지금은 레코드점이 많이 없어졌다. 음원사이트가 생기면서 음원시장으로 바뀌게 됐다. ‘노래를 듣자’가 아니라 ‘노래나 듣자’가 되어 버린 거 같다. 예전에는 오직 음악을 들으러 찻집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음악이)바쁜 일상 속에 BGM이 되어 버린 거 같다. 나는 사실 음악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람이다. 난 경영학과를 나왔는데 음악을 한다. 이제는 음악이 인생을 바꾸기보다 한 사람의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씁쓸하진 않다. 그게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감성이 사라진 건 아쉽긴 하지만 대신에 전문성이 깊어졌다. 예전에 가수들이 모든 장르를 다 건드렸다. 나도 하우스, R&B 등등 이것저것 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예를 들어, 아이돌 음악은 확실히 아이돌 음악이있다. (아이돌이 아닌)다른 가수들이 하면 어색하다. 확실하게 자기의 장르를 발전시킨 거 같다. 나도 마찬가지로 발라드 안에서 락풍, 재즈풍으로 발전시키는 거 같다” “예전에는 전주만 들어도 ‘팝송같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 게 팝이고 가요인지 구분이 안된다. 그만큼 음악적 역량과 전문성이 높아졌다. 예전엔 ‘음악시장’이었는데 지금은 ‘음악산업’이다. 예전엔 시장이고 주먹구구가 통했다. 지금은 체계적이다. 많이 전문적이 됐다. K팝의 위상이 높아진 것도 사실인 거 같다. 아날로그 감성은 없어도 디지털 안에서 이런 게 충실하게 됐다. 그 와중에 뉴트로가 유행하면서 다시 살짝 아날로그가 살아난 거 같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섞인 시대가 됐다. 재밌는 거 같다” [인터뷰②]에 계속최현정 기자 gagnrad@idol-chart.com저작권자 ⓒ 아이돌차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04.0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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